지난 https://tobefreein2040.tistory.com/147에서는 김태유 교수님의 '위대한 문명사'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이 마주한 시대적 도전과 문명사적 통찰의 중요성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역사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여정,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김태유 교수님이 제시하는 '문명사'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역사와는 어떤 결정적인 차이를 가지는지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갑니다. 많은 이들이 문명사를 역사의 한 분야로 여기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문명사가 과학기술, 경제학, 지정학, 그리고 역사를 아우르는 가장 포괄적인 틀이라고 역설합니다.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기록하는 역사를 넘어,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심층적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문명사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강의에서 교수님은 본인의 학문 여정을 통해 어떻게 문명사 연구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하며, 이러한 문명사적 관점을 통해 산업혁명과 강대국의 흥망을 재해석합니다.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 놓친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산업혁명은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 혁명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와 치밀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였을까요?
더 나아가, 영국과 미국의 산업혁명 성공 이면에 숨겨진,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허 기간의 인위적 연장, 국가 주도의 보호무역과 관세 정책, 심지어 국민적 희생을 감수한 전쟁까지. 이러한 사례들은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 걸까요?
본 포스팅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역사의 표면 아래 숨겨진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문명사의 눈으로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통찰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만들어지는' 혁명과 그 이면의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RY74R9aRJNA&list=PL142diDwvogaLJhMhLkah3fLChoTztsk7&index=2
강대국의 흥망과 산업 혁명의 본질
1970년대 폴 케네디 교수의 명저 『강대국의 흥망』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제국이 확장하면서 국경이 길어지고 병참 거리가 늘어나 전쟁에서 얻는 이득보다 비용이 커지면 제국이 망한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 등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며, 1970년대에는 미국 또한 곧 쇠퇴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농업 사회와 산업 사회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습니다. 농업 사회는 생산성이 체감하는, 즉 경제 성장이 감속하는 사회입니다. 농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산량은 한계에 부딪히고, 이는 곧 한계 생산 체감의 법칙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폴 케네디의 이론이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생산이 체증하고 경제 성장이 가속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 때문입니다.
- 규모의 경제: 똑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면 생산 단가가 낮아집니다.
- 운송의 효율성: 대량 운송 시 운송비가 절감됩니다.
- 숙련도 향상: 여러 개를 만들면서 생산자의 숙련도가 높아집니다.
- 분업의 효율성: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핀 공장의 사례처럼, 생산 과정을 여러 공정으로 나누어 분업하면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러한 분업의 효율, 규모의 경제, 기술의 경제는 생산을 점점 체증시켜 경제 성장을 가속합니다. 과거에는 땅이 넓을수록 농업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산업화된 현대 농업은 기계화와 드론 등을 활용하여 오히려 땅이 넓을수록 효율이 높아집니다.
결국 인류 문명의 변곡점은 농업 사회의 경제 성장 감속에서 산업 사회의 경제 성장 가속으로 전환되는 시점입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설명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려면 이러한 경제 성장의 가속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산업 혁명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혁명'이라고 하면 세상이 한순간에 뒤집어지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의 가속은 초기에 매우 느리게 시작하며, 뒤로 갈수록 폭발적으로 빨라집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아 산업 혁명을 부정하는 경제학자들도 많았습니다. 영국의 경제사 대가들도 산업 혁명이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현상이라 혁명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심지어 실질 생산성 증가에 기여한 바가 미미하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공장 한두 개가 기계화되면서 전체 평균 성장이 미미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계화가 확산되자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였습니다. 그는 석탄을 이용해 면직물을 생산하며 급격한 변화를 이룬 영국의 상황을 '산업 혁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영국의 산업 혁명을 1차, 미국의 산업 혁명을 2차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차와 2차 산업 혁명은 100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농업 사회를 산업 사회로 바꾸는 연속적인 혁명의 전반부와 후반부로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산업 사회를 미래 지식 산업 사회로 변화시키는 과정도 혁명입니다. 3차 산업 혁명(정보화 혁명)은 초기에 변화가 미미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우 교수는 "컴퓨터 시대는 왔는데 생산성은 올라가지 않네"라며 컴퓨터 혁명의 역설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마틴 울프 같은 경제학자들도 정보 기술, 로봇,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 혁명이 과대 포장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4차 산업 혁명 초기에 변화의 효과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등장하며 혁명적인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사를 돕고,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는 등, 4차 산업 혁명은 후기로 갈수록 그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산업 사회의 경제 성장이 가속하고, 지식 산업 사회로 갈수록 더욱 빨라진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김태유 교수님은 4차 산업 혁명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여러 역사학자들에게 사사하며 역사를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4차 산업 혁명 이론이 가장 정확하고 잘 맞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패권의 비밀』이라는 책을 영어로 출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언젠가 세상에 밝혀지기를 바라며 기록을 남겼습니다.
'불편한 진실': 반칙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강대국
교수님은 현재 4차 산업 혁명이 여전히 초입 단계이며, 과거 증기 기관이 세상을 바꾼 것처럼 엄청난 변화가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하급수적인 생산성 향상은 아직 맛보지 못한 단계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은 1950년대에 등장했지만 오랜 침체기를 겪다가 최근에야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많은 직업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이처럼 산업 혁명의 사회적 변화와 산업 사회의 발전 속도는 가속화되며, 지식 산업 사회로 갈수록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그 법칙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패권의 비밀』은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교수님은 산업 혁명은 절대로 저절로 일어나지 않으며, 반드시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증기 기관 기술도 원래 프랑스 사람 드니 파팽이 개발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이 기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뉴커먼에 의해 개량되고, 제임스 와트에 의해 효율적인 증기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제임스 와트는 사업가적인 수완이 부족하여 초기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했지만, 사업가 매튜 볼튼이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투자하여 '볼튼 와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 특허는 14년 중 6년이 지나 7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기술 복제가 쉬웠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7년 안에 투자를 회수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볼튼과 와트는 영국 의회에 특허 기간 연장을 청원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치열한 논쟁 끝에 의회는 근소한 표차로 20년 연장을 결의했습니다. 총 29년 또는 31년간 특허 보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고,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은 완성체로 세상에 나타나 영국의 산업 혁명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즉, 매튜 볼튼의 사업 수완, 제임스 와트의 기술, 그리고 이를 보호하고 키워준 의회의 입법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영국의 산업 혁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영국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 산업 혁명이 터져나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4차 산업 혁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면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가 안 만들어내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국은 한반도보다 조금 큰 섬나라에 불과했지만,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를 통해 오대양 육대주를 지배했습니다. 미국의 독립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어지는 영연방 국가들은 결국 영국의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영국이 일으킨 것입니다.
패권국의 정의와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
우리는 흔히 강대국, 선진국, 패권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 강대국: 힘이 센 나라, 즉 국가총생산(GDP)이 큰 나라를 의미합니다. 미국, 중국, 인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 선진국: 1인당 소득이 높은 나라를 의미합니다. 인도는 강대국이지만 선진국은 아닙니다. 핀란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처럼 인구는 적지만 1인당 소득이 높은 나라들이 선진국입니다.
선진국과 강대국이 겹치는 나라는 미국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패권국이란 무엇일까요? 과거 약육강식 시대의 로마 제국이나 몽골 제국은 다른 나라를 점령하고 노예 삼아 빼앗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모든 가치가 땅에서 창출되었기에 남의 땅을 빼앗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산업 사회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남의 나라를 빼앗지 않고도 생산 요소(원료, 소재, 부품, 장비, 기술, 노동 등)만 확보하면 자국 내에서 얼마든지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패권국은 다른 나라를 빼앗지 않고, 강압과 회유를 통해 자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채찍과 당근(경제력, 군사력, 사상적 매력 등)'을 동원하여 다른 나라가 패권국의 의도에 맞춰 무역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국가의 '자발적 동의'를 거친다는 점입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는 무조건 침략했지만, 이제는 트위터로 압박하고 윽박지르더라도 형식상 '동의'를 구합니다. 이것이 문명 사회의 패권국과 과거 비문명 사회 강대국의 차이입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 제조업과 제철업을 못하게 막혔습니다. 독립 후에도 영국의 경제 식민지 상태였습니다. 유럽에서 고급 면직물 제품이 수입되고, 미국 남부의 농장주들은 노예를 부려 목화를 생산하여 유럽에 수출했습니다. 이는 링컨 대통령이 관세를 사랑하는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링컨 때 모릴 관세법이 통과되어 관세율이 거의 50%까지 치솟았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이에 대응하여 미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했고, 목화 수출이 막힌 남부 농장주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됩니다. 반면 북부의 공장주들은 유럽 상품값이 비싸지자 국내에서 만든 제품이 팔려 큰돈을 벌었습니다. 결국 남부 주들이 연방에서 탈퇴하며 남북 전쟁이 시작된 주된 이유는 노예 해방이 아닌 관세 때문이었습니다.
남북 전쟁은 18세부터 40세까지의 미국 젊은 남성 약 60만 명이 사망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량 살상 전쟁으로 평가됩니다. 당시 미국 인구가 3천만 명 남짓이었으니 엄청난 희생이었습니다. 미국은 이처럼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대가로 산업 혁명과 산업 기술을 얻었습니다. 즉, 농업 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의 성공은 국가 주도의 관세 정책과 기술 확보를 위한 희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국과 미국의 산업 혁명 사례는 형태와 상황은 다르지만,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성공을 이끌어냈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영국은 '외생적 성장'이라 불리는 '반칙'을 통해 네덜란드를 누르고 강대국이 되었고, 이후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자유 무역과 공정 경쟁을 주장했습니다. 이 '반칙'과 '사다리 걷어차기'는 모두 영국의 '발명품'이며, 이를 그대로 따라 한 미국 또한 성공했습니다. 국가 발전의 원리는 결국 하나라는 것이 교수님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의지를 갖고 4차 산업 혁명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북극항로 등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다고 교수님은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불편한 진실도 있습니다. 영국의 특허 연장 사건이나 미국의 남북 전쟁에서처럼, '공정하지 않은' 결정과 '옳은' 주장을 묵살하는 과정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면, 과연 '공정', '공존', '연대', '나눔'과 같은 가치들은 선진국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요?
교수님은 이는 국가 발전 원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며, 짧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국가 발전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내생적 성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평평하지 않고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경제 외적인 공권력을 동원하여 격차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최초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 나라는 영국입니다. 당시 유럽의 최고 부자 나라는 네덜란드였습니다. 영국은 올리버 크롬웰 독재자 시절 항해 조례를 만들어 네덜란드 선박의 영국 및 식민지 운항을 금지하고, 영국 배만 사용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이는 강제적인 '국산화 조치'였습니다.
또한 영국은 모직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양털 수출 금지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양모를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인 완제품으로 수출하도록 강제하는 조치였습니다. 이후 인도에서 수입되는 면직물이 영국 모직물 산업을 위협하자, 영국은 1720년 면직물 수입 금지법을 만들었지만 밀수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1721년에는 면직물 착용 금지법이라는 전무후무한 법을 제정하여 면직물 착용 자체를 불법화했습니다. 이는 일제 텔레비전 시청 금지나 미제 자동차 탑승 금지와 같은 강력한 조치와도 비견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면직물 옷을 입은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옷을 찢었다고 합니다.
영국인들은 이러한 독한 조치를 통해 자국 내에서 기계로 짜는 면직물 공업을 일으켰습니다. 인도의 수직 면직물 산업은 쇠퇴했지만, 영국은 새로운 면직물 산업을 통해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과 시너지를 내며 산업 혁명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는 오늘날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 정책과도 유사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산업 혁명의 역사는 조건과 시대가 달라도,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들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정', '공평', '공존'과 같은 개념들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문명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생산을 혁신하는 기술입니다. 부가 있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고, 우리나라도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이공계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태유 교수님을 만든 것은 결국 어린 시절의 역사 소설이었듯이, 역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렇게 김태유 교수님과 함께한 두 번째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문명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부터 강대국들의 흥망성쇠에 담긴 비밀까지, 이번에도 역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시리즈 글을 통해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는 "농업사회는 감속하는 사회이고, 산업사회는 가속하는 사회"라는 명쾌한 진단이었습니다. 과거 로마나 몽골 제국처럼 영토 확장이 곧 국력 소모로 이어져 쇠퇴했던 농업 사회의 한계, 그리고 폴 케네디 교수의 『강대국의 흥망』이 현대 사회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던 이유가 바로 이 '성장 속도의 패러다임' 차이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산성이 체감하는 시대를 넘어, 규모와 분업, 기술의 경제를 통해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체증하고 경제 성장이 가속하는 산업 사회의 동력은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듯했습니다.
둘째로, 이렇게 가속하는 산업사회에서 패권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산업 혁명은 결코 아름답고 평화롭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특허 기간의 인위적 연장이라는 '반칙'이나, 남북전쟁과 같은 거대한 '희생'을 동반하며 누군가의 강력한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영국의 항해 조례나 면직물 착용 금지법, 미국의 보호무역 관세 정책 등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공정'이나 '자유무역'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것이 당시 후발주자였던 그들이 선진국을 따라잡고 패권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선택했던 냉엄한 현실이었다는 점은 많은 고민을 안겨줍니다.
이러한 '가속하는 사회'의 역동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들 사이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지혜를 얻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요?
오늘도 긴 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로에 선 대한민국 > 김태유 교수님의 '문명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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